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매디슨 (문단 편집) ==== 미영전쟁 ==== 매디슨 재임 시기 가장 유명한 사건은 아무래도 [[미영전쟁]]일 것이다.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전란에 휩싸인 시기였는데, 이때 병력이 급했던 [[영국]]은 말이 통하는 미국 선박을 일단 나포, 선원들을 '''[[납치|강제징집]]'''시키는 황당한 경우가 꽤 있었다. 당연히 이에 빡친 미국과 나몰라라 하는 영국의 행태가 미영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우선 매디슨 정권은 '매콘법안 2항'을 제정했는데, 이것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미국의 [[중립]]을 인정하고 미국 선원과 선박을 존중한다면 미국이 다른 교전국에 출항을 금지할 것이라는 명확 조건을 명시한 후 영국과 프랑스와의 통상을 재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허나 이 법안에 대해 [[프랑스]]는 미국의 중립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영국]]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이에 빡친 미국 정부는 영국과의 통상을 금지했고 [[의회]]에서도 "언제까지 영국한테 끌려가야 하느냐"는 여론이 강화되면서 매디슨 역시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다. 이 전쟁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미영전쟁]] 항목에 설명된 대로, 1814년 6월 전쟁이 시작되고 초기엔 미국이 영국령 캐나다에 우위를 점하기도 했지만 유럽에서 한숨 돌린 영국이 화력을 집중하기 시작하자 미군은 거의 발리다시피 했고 백악관과 의사당, 의회도서관이 모두 불타는 수모를 겪게 된다. 특히 [[워싱턴 D.C.]] 근교의 블래던스버그 전투에서 미군은 영국군에게 거의 박살이 나다시피 했는데 매디슨은 이 대패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고, 본인도 피난을 떠나야 했다. 그래도 구사일생으로 이후 미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개시하여 영국군에게 타격을 입혔고, 영국도 나폴레옹 전쟁으로 지쳐 있던 터에 지리멸렬하는 전쟁을 지속하고 싶지 않아 미국에 협상을 요청했고 매디슨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벨기에]]의 겐트에서 종전협상을 맺었다. 그런데 이 협상 타결이 된 며칠 후인 1815년 1월 8일, 뉴올리언스에서 이 전쟁 최대의 격전이자 미군 최대의 승전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 통신 사정이 나빠 협상 소식이 늦게 전해진 이곳에서 [[앤드루 잭슨]]이 지휘하는 미군이 영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이런 막바지 승리로 [[자존심]]도 챙기며 영국군까지 철수하자 미국 국민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고 매디슨의 재임기 이후 미국인들의 집단적 정체성은 크게 고취되었다.[* 미국 [[국가]]인 [[성조기]]가 작사된 것도 미영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이때 매디슨은 전시에 나라를 이끈 대통령 중에서는 '''헌법을 위반하지 않은 대통령''' 중 한명이 되었다. 가령 [[에이브러햄 링컨|링컨]]은 남북전쟁 도중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고 자금을 쓰거나 계엄령을 선포했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루스벨트]]도 전쟁 중 적국이었던 [[일본]], [[독일]],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강제수용을 명령한 적이 있었다. 이에 비해 매디슨은 전시 지도자 치고 '헌법'은 어기지 않고 잘 준수한 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